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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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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엄마들은 왜 온종일 집안일을 하고도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는가

주부라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
남편에겐 아내, 집사람, 와이프 등으로 불립니다.

이들은 집에서 다양한 종류의 일을 하지만
불시에 “집에서 놀면서 이것도 안하고 뭐했어!”라는 말을 듣습니다.

도대체 이 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출판사 서평

남성들의 언어 속에 감춰진 가사 노동의 사회․역사․경제적 비밀을 파헤치다
― 왜 나의 노동은 노동이 아닌가


‘사랑’과 ‘헌신’의 이름으로 집안일과 육아를 꾸역꾸역 감당하는 엄마! 주부라 불리는 이들은 온종일 가사일을 하면서도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방금 설거지를 했는데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고, 방금 요리를 마쳤는데 논다는 말을 듣는다. 매 순간 자신의 행위를 부정 당하는 것이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 다양한 자리에 선 주부들의 고충을 듣고, 사유하고, 글쓰기로 가꾸어낸 책이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남성들의 언어 속에 감춰졌던 가사 노동의 사회․역사․경제적 비밀을 파헤친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주부들의 애환․고충․공감의 감성에서 한 발 더 들어가는 탐험을 시작하는데, 근본적인 질문을 가슴에 품고 그 연원을 파고 들어간다. 가사 노동은 왜 이렇게 폄하 당하게 되었을까? 이런 현상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작가는 큰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둘째를 임신했을 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2주째 되던 날, 친구와의 전화 통화에서 “너 회사 그만두고 집에서 논다며?”라는 말을 들었다. 얼마 뒤에는 “너는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편하게 먹고 살지 않느냐?”는 말도 들었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과연 주부는 남편이 벌어다준 돈으로 편하게 노는 것일까?
초등학교 입학 이래 저자에게는 늘 소속이 있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주부가 되니 갑자기 소속될 곳이 사라졌다. 주부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일상은 드넓지만 아무것도 없는 기이한 진공 상태처럼 느껴졌다. 엄마, 주부의 세계는 왜 이러한가. 왜 주부는 경제 인구에 포함되지 않는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아이가 중요한가, 일이 중요한가라는 찜찜함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왜 나의 노동은 노동이 아닌가. 등등의 사소하지만, 뼈아픈 근본적인 질문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그러한 질문과 엄마로서 주부로서 불편해지는 마음에 대하여, 독서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엄마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하고 공감하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이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현실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 싶었다. 우리들의 문제가 ‘돈’이라는 시커먼 물건과 연관된 것임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내 문제의식은 한 가지였다.
엄마들은 왜 온종일 가사를 하고도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는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감정적 토로나 언어적 배려의 차원보다 더 깊이 들어간 무엇이 필요했다.
돈 얘기를 해야 한다!
모든 일의 핵심에는 돈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p.6)

‘집에서 논다’는 말의 연원을 찾아 열다섯 권의 책을 타고 떠나는
시공간 여행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게오르크 지멜의 [돈의 철학],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혁명의 영점], 카트리네 마르살의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김하나·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등 작가가 큐레이션한 열다섯 권 책은 포스가 느껴진다.
큐레이션은 무겁지만 스타일은 ‘생활밀착형’이다. ‘생활밀착형’이기에 가깝게 다가온다. 작가는 두 아이의 엄마, 주부라는 존재적 기반 위에 서서 현실과 현장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집에서 논다’는 말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왜 경제학에는 엄마, 주부 등의 여성이 없을까?’ ‘왜 주부의 노동은 비임금 노동이 되었을까?’ ‘사회문화적으로 주부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져왔을까?’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은 연대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들을 품고 떠난 시공간 여행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자신이 하는 일을 ‘일’이라 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단비와 같은 언어를 제공할 것이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1장이 전업주부라는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한다면, 2장은본격적으로 ‘경제학’ 고전들을 탐색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게오르크 지멜의 [돈의 철학]과 같은 주류 경제학 도서들이다. 백미는 자본주의의 ‘시초 축적’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역사 속 여성들의 경험을 연결하며 시초 축적에서 배제되었던 여성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큰 틀에서 조망한다. 주류 경제학에서 생략된 수많은 손길이 있는데, 그것은 돌봄을 담당하는 비임금 노동자의 손길, 주로 엄마나 아내라 불리는 이들의 손길이었다. 그리고 이 손길이 경제학에 포함되는 것은 어마어마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변동을 동반할 것이다. 만일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때 저녁을 차려준 어머니의 노동을 경제적 요인에 포함시켰다면 그 후 경제학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으리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처음부터 구성요소로 포함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마음대로 공짜로 가져다 쓰되 그 가치는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여성의 돌봄 노동과 천연 자원은 쌍생아처럼 닮아 있다. 그 때문에 여성의 모성, 여성의 돌봄 노동에는 ‘자연스러움’, ‘천성’이라는 개념이 따라왔다.

작가는 이 과정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현재 위치를 지각한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먹고살지 않느냐?”라는 말에 이렇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내가 먹고 사는 게 아니다. 내가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고 아이들을 건사해주기 때문에 남편이 마음 편히 나가서 일하고 올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내가 없다고 가정해보라. 아이들 보고 살림하느라 남편이 제시간에 출퇴근할 수 있겠는가? 2주짜리 출장을 아무 때나 갈 수 있겠는가?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부탁하려면 남편이 벌어 오는 돈 전부를 다 줘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나’라는 비임금 노동자가 있기 때문에 남편이 임금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관계는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한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다. 다른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이.”
( '누가 누구에게 의지하는가' 중에서/ pp.142~143)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적절한 예화가 많다. 미혼 여성도 시원함을 느낄 만큼! 책과 현실을 잇는 것이 매끄럽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대척점에 있는 반대 진영의 책을 일부러 찾아 읽기도 하면서 사유를 단단히 하고, 읽었던 책의 아쉬운 부분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엄마, 주부라는 역할 밑바닥에 있는 자기 존재의 근원, 여성, 페미니즘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에는 돈․여성․페미니즘․돌봄 노동․자본주의․가족․복지․국가․ 경제학․사회학이 모두 얽혀 있는데, 인문 에세이 스타일로 버무려져 있다. 감정적 대응으로 빠지지 않고 성실히 분석하며 일상 언어로 풀어 말한다.

누군가에게 비논리적 공격을 당했을 때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시원하게 논리적 무기를 장전해주는 책. 심지어 실용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적재적소에서 펼쳐지는 재치와 수다! 질문은 뜨겁게, 답은 냉철하게. 책 말미로 갈수록 국가와 사회의 복지 정책까지 조금씩 범위를 확장해나간다.

목차

지은이의 말

1장 주부들이 사는 외딴섬


“너 집에서 논다며?”
주부들의 세상은 왜 이렇게 다른가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도 회사를 그만둘 것인가
레슬리 베네츠,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요리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라문숙, 『전업주부입니다만』

2장 핵심은 ‘돈’에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나는 왜 회사를 그리워하는가
게오르크 지멜, 『돈의 철학』
나는 왜 뉴스에 나오지 않는가
카트리네 마르살,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아이 셋을 길러낸 전업주부는 왜 연금을 받지 못하는가 낸시 폴브레, 『보이지 않는 가슴』

3장 자본주의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누가, 왜, 여성들을 불태웠는가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누가 누구에게 의지하는가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공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박가분, 『포비아 페미니즘』
내 몸 안에 갇힌 나를 어떻게 들여다볼 것인가 로이 F. 바우마이스터, 『소모되는 남자』

4장 경계선 너머의 세상

왜 가사 노동에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가 실비아 페데리치, 『혁명의 영점』
비구니가 『아빠수업』이라는 책을 낸다면 어떤 반응을 받을까 법륜, 『엄마 수업』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은 연대할 수 있을까
김하나·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주부들은 왜 제 가족의 안위만 생각할까 서영남, 『민들레 국수집』
글을 닫으며―자본주의와 함께 시작된 해묵은 거짓말

본문중에서

전업주부를 폄하하는 말이 마음껏 뛰놀며 활약하는 대지에는 ‘아빠’라 불리는 이들과 ‘결혼과 출산과 육아라는 전형
적 길을 가지 않는 비혼 여성’이라는 존재가 서 있었고, 이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나는 가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 길을 걸어간 끝에 만난 세상은 더 넓고 더 다채로운 곳이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집에서 가사를 담당하는 이들을 폄하하는 사회현상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은 엄마들만이 아니라 아빠들, 엄마가 아닌 주부들, 엄마도 주부도 아닌 비혼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변화된 생각의 과정을 드러내고 분류하고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변화 과정을 드러내기 위해 초반에 품었던 단선적이고 편협한 생각들도 여과 없이 기술했다.
(/ p.11)

전업주부란 무엇인가? ‘전업’이라 하는데, 주부는 과연 ‘업’인가? 그렇다면 ‘업’이란 무엇인가? 그때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정체성의 80퍼센트는 주부인 (글쓰기라는 저소득 파트타임 일을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 정체성은 주부다) 나는 지금도 모르겠다. 전업주부가 무엇인지. 지금도 모르니 그때는 어땠겠는가. 그 시절을 떠올리면 대뜸 하나의 형용사가 떠오른다. ‘황량하다.’ … 내게 주부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일상은 드넓지만 아무것도 없는, 기이한 진공상태처럼 느껴졌다.
(/ pp.30~31)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왜 이렇게 다른가? 사회생활을 하던 때 만났던 이들과 지금 대면하는 이들은 왜 이렇게 다른 느낌을 주는가? 회사 다닐 때 만났던 이들 중 절반이 넘는 사람이 여성이었고,
그중 아이 엄마도 많았는데, 그들은 이런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전업주부가 되어 만난 이 여성들은 왜 이다지도 다른 느낌을 주는가? 그에 대한 답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한 미국 사회학자의 저서를 읽으면서였다.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 p.33)

사회는 갓난쟁이를 둔 여성에게 집으로 돌아가라는 사이렌을 열성적으로 울려대지만, 엄마로만 사는 10여 년이 흐르고 여성이 엄마가 아닌 다른 정체성을 요하기 시작하면 차갑게 외면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까지는 좋았어.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내 알 바 아니거든’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아이가 엄마보다 또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시기가 오면 엄마는 알아서 집을 나가야 한다. 엄마가 되기 이전에 받던 월급의 3분의 1도 받지 못하든, 그런 일조차 구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든 모두 각자가 해결할 문제지 사회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 pp.50~51)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책을 덮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오면 슬며시 의문이 솟아오른다. 그럼 아이들은? 알 수 없는 사람의 손에 맡겨지는 아이들의 마음은? 물론 저자의 말은 구구절절 옳다. 이상적으로 생각할 때 나는 여성이 집에 있는 것보다 나가서 일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보면 주춤하게 된다. 가정은 인류에게 남겨진 마지막 공동체가 아닌가. …… 가족은 원시시대에 있었다는 ‘나눔’의 삶, 내 것 네 것 따지지 않고 사냥해 온 고기를 똑같이 나누어 먹는 원시 공산제를 실현할 지상 최후의 ‘공산주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계산 없이 ‘나’를 주고 ‘너’를 건네받는 유일한 집단이기 때문에. 그리고 전업주부는 이런 ‘가정 공산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 이에 대한 대안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아직도 그럴싸한 형태로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를 포기한단 말인가. 지상의 마지막 공동체를 방어하는 역할을 어떻게 내동댕이친단 말인가.
(/ pp.58~59)

돈에 관한 소설을 구상하던 때였다. 소설의 개요를 잡아가는 와중에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작성했는데, 『자본론』이 들어갔다. 카를 마르크스의 대표 저서인 『자본론』은 그전에도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여러 번 포함되었지만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매번 떨궈져 나갔다. 하지만 이때는 차마 뺄 수가 없었다. 돈에 관한 소설을 구상하는 자가 『자본론』을 피해 간다니. 검색에 돌입했다. 혹시 『자본론』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주는 강의가 어디 없는지.
다행히 그런 자리가 있었다. 서울 변두리에 사는 내게는 너무 먼 동네이긴 했지만 어쨌든 서울 시내에 『자본론』 강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멀어도 그게 어딘가. 『자본론』을 풀어준다는데.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지덕지한 강의였다. 지금 생각하면 ‘천운’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일이었다. 내가 등록했던 강좌는 일주일에 두 번, 한 번은 강의로 듣고 한 번은 세미나로 진행하는 다소 ‘빡센’ 코스였고, 마지막에는 글을 써서 발표하는 시간이 내정되어 있었다. 공부할 기회를 발견하자마자 입금을 단행했다. 뭐든지 해내려면 돈부터 집어넣어야 한다는 걸 40년이 넘는 인생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72)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에서는 작가는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도운 여러 경제적 요인을 따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을 빼먹었다. 저녁 밥상에 올릴 재료를 수합하여 다듬고 소스를 가미하고 그릇에 담아 식탁을 차려낸 한 인물, 저녁 식탁을 차렸던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라는 인물을.
(/ pp.94~95)

세상에 아내라 불리는 ‘주부’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일거에 무너질 것이다. 주부가 남편인 노동자에게 해주던 온갖 종류의 무상 재생산 서비스가 사라지면 노동자는 그 모든 서비스를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할 테고, 그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임금 인상이라는 결과를 낳을 테니. 그렇게 되면 자본이 어떻게 이윤을 취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마차가 굴러가게 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를 무상으로 재생산해주는 ‘주부’이다. 주부가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를 점하는 이유는 이런 원리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일’로 취급받지 못하고, 하는 일의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기에 사회에서 어떠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 pp.185~186)

이제 여성은, 그리고 여성과 함께 삶을 영위하는 남성은, 자본주의가 빼앗아 간 고귀한 기회를 되찾아 와야 한다. 여성은 혼자 강제로 짊어졌기 때문에 그 본연의 매력을 향유할 수 없었고, 남성은 인위적으로 제외됐기 때문에 그 본연의 생명력을 향유할 수 없었던, 살림과 육아라는 생의 축제에 대한 지분을 남녀가 합심하여 고르게 재분배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해묵은 거짓말, ‘집에서 논다’는 말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맥락을 잃게 될 것이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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